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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유산

녹슨 탱크 위에 자란 풀무더기, 베트남 DMZ



[불편한 유산 #1] 베트남 비무장지대


평온하다. 처참하게 울려대던 총소리 대신 재잘거리는 새울음소리만 적막한 공간을 채운다. 점점 붉게 변하는 녹슨 탱크 위로 초록의 풀꽃들이 무더기 지어 자란다. 적진을 향해 있던 155m 포 역시 수명을 다한 채 잠들어 있다. 최전방의 대형 군기지는 관광객을 맞이하는 아담한 모습의 기념관으로 변했다. 불과 몇십년 전만해도 매케한 화약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던 참혹한 전쟁의 현장, 베트남 DMZ의 요즘 모습이다.

미 해병대가 주둔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록파일, 미군의 고엽제 살포로 밀림이었던 이곳이 30년이 지나서야 풀들이 자랐다고 했다



전쟁의 흔적을 따라 9번 도로를 타고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베트남의 가운데를 가르는 9번 도로를 따라간다. 1954년 7월, 제네바에서 맺어진 협정으로 이 일대는 약 20년동안 베트남 남북을 가르는 비무장지대, DMZ가 됐다. 17도선 분계선을 중심으로 남북으로 5km는 비무장지대를 두기로 한다는 약속을 1조로 택한 정전협정에 양쪽 모두 합의하면서다. 

베트남이 분단된 것은 2차대전 이후 다시 베트남을 노리던 프랑스에 의해서였다. 하지만 비실비실한 남베트남을 끌고 다니다 지친 프랑스가 정전협정을 맺고 사라진 자리를 미군이 차지하면서 전쟁은 커졌다. 동남아시아의 또 다른 반공 요새를 만들기 위해 꾸준하게 남베트남 정부를 지원하던 미국은 남쪽의 패색이 짙어지자, 1965년 말 약 15만명의 미군을 본격적으로 베트남 땅에 파병하면서 전쟁의 서막을 열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8년에 가까운 전쟁 기간 동안 민간인은 전체 인구의 10%에 달하는 4백만명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남베트남 22만명, 북베트남과 베트공은 100만명에 달하는 군인이 죽었다. 미군도 5만8천명 죽었으며 여기에 쏟아 부운 돈은 1,650달러에 달했다. 하늘은 그 때의 악몽을 기억하는지 모르는지 그저 파랗기만 하다. 중간에 만난 소수민족 바루족 마을의 아이들의 웃음도 해맑기만 하다.


북위 17도, 사라진 분단의 현장
이제는 작은 전쟁기념관으로 바뀐 케산미군기지에 들어섰다. 기념관 주변 공터에는 전쟁때 사용되던 탱크와 헬리콥터, 포와 포탄 등의 무기들이 녹슨 채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앞에는 불발탄과 탄환 등을 수집해 기념품으로 파는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기념관 안에는 전쟁 당시 사용했던 장비들과 사진 등이 오밀조밀하게 전시돼 있었다.



현지 가이드가 기념관 입구에 있는 지도를 보며 DMZ의 옛 모습을 하나씩 설명했다. 비무장지대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곳은 베트남 전쟁의 최대 격전지였다. 미군은 DMZ 최전방에 케산미군기지와 미해병대를 주둔시켜 승기를 잡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북베트남은 끊임없이 이 지역을 괴롭혔다. 결국 미군은 케산을 포기할 수 밖에 없었고 북베트남은 라오스로 이어지는 호치민루트를 확보해 전쟁을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었다. 딱딱한 영어발음으로 차근히 이야기하던 가이드는 "하지만 어떠한 이유에서건, 어떠한 사상에서건 민족끼리 서로 죽여야하는 전쟁은 없어야 한다"며 말을 맺었다.


155mm 포 주변에는 보온병을 포탄으로 사용한 흔적은 없었다


 

동굴의 삶, 빈목터널

케산 미군기지를 빠져 나와 한참을 달렸다. 분단의 경계선이었던 벤하이강을 건너 북으로 더 달렸다. 차에서 나온 우리들을 터널로 안내했다. 길이가 3km에 달하는 터널은 전쟁 당시 실제 주민들의 삶의 공간이었다. 동굴은 깊이에 따라 세단계로 나눠진다. 공기가 잘 통하고, 긴급한 상황에 잘 대처하기 위해서였다. 주민들은 좁은 터널 옆에 공간을 만들어 생활했다. 치열한 전투 속에서 살아 남는 방법은 그것 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총을 만져야 했고, 어른들은 끊임 없이 동굴 사이를 오가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을 것이다. 약 600명의 주민들이 십수년의 세월을 어둠과 두려움을 이기며 살아 온 역사의 자리였다.






그날을 기다리며
DMZ는 우리에겐 참 익숙한 용어이다. 분단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61년이 지났다. 한반도에서 잔인한 전쟁이 시작된지 벌써 그렇게 됐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전시 상황이다. 우리의 DMZ는 정전협정이 아직도 유효하게 남아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헤어진 부모형제도 마음 놓고 만날 수 없는 벽 앞에서 이제는 탱크와 함께 녹슬어가는 베트남의 DMZ는 많은 의미를 던져주었다. 결코 전쟁이나 한쪽의 파멸이 아닌 서로 대화를 통해 조금씩 만들어가는 평화의 그날을 바라보게 한다. 어디는 핵으로 장난치고, 다른데는 흡수통일 운운하는 현실 속에서 그날이 아득하게 보여지지만, 희망은 언제나 살아있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