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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유산

제주 해안에서 울상 짓는 동굴 발견하다

[불편한 유산 #2] 제주 일본군 진지 동굴

제주에서 서쪽 해안도로를 따라 갔다. 차귀도를 지나 바다 바로 옆에 난 좁은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갔다. 폭풍치는 바다는 음산하다 못해 약간 무섭기까지 했다. 검은 바위들에 부딪히는 거친 파도들은 도로 위까지 덮칠 것만 같다.

바다 반대편은 퇴적층 절벽으로 돼 있다. 겹겹히 층이 나눠져 올록하게 굴곡진 모습이 절경이다. 한참을 그렇게 가다보니, 어라 저게 뭐지? 이상한게 보였다. 울상을 짖고 있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자세히 보기 위해 차를 세웠다. 안은 빈 것 같다. 멋진 퇴적층 절에 웬 뜬금없이 비호감 동굴?

해안을 바라보고 있는 비호감 동굴은 바로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해안 진지다. 일본은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 제주 곳곳에 이러한 동굴 진지와 요새를 만들었다.

저 안에서 일본군은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은 텅 비어 있다.

녹슨 철창을 타고 오르는 무성한 풀들이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를 보여준다.

옆에 보니 하나 더 있다. 절경인 해안 절벽 중간에 떡하니 버티고 있어 아름다운 풍경을 망치고 있다.

울상 짓고 있는 두 진지를 나란히 찍었다.

진지 바로 앞에 있는 해안가. 적들이 이곳으로 침투하는지 감시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해안 진지 바로 옆 절벽을 찍을 사진, 이곳은 수월봉 화산쇄설암층으로 지형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다가 저런 비호감 진지를 만들다니... 참 미적 감각도 없었나보다.


제주의 상처, 일본군 군사요새 3500곳

제주에는 일제시대에 만든 일본군 진지동굴과 요새가 3,500개 가량 있다고 한다. 곡갱이와 삽 한자루만으로 전쟁 시설을 만드는데 수많은 제주도민이 강제로 동원됐다. 사고도 부지기수였다. 파들어가는 동굴에서 위험한 상황도 번번히 겪었을 것이다. 

크기로 따지면 섯알 오름 해안진지동굴과 가마오름 땅굴진지동굴이 각각 약 1.2km로 가장 규모가 크다. 다른점은 섯알 오름 진지동굴은 제주 남서쪽에 있는 송악산 해안절벽에 있는 해안진지동굴이고. 가마오름 땅굴동굴은 제주 남서쪽 중산간 오름에 있는 땅굴동굴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군이 해안과 중산간지역을 가리지 않고 제주 전역을 전투 요새화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마오름 진지동굴이 있는 곳에는 현재 평화박물관이 세워져 운영하고 있다. 일제시대 당시 동굴 진지를 짓기 위해 노역했던 분의 자제분이 제주에 숨겨진 아픔을 전하고자 직접 세운 것이다. 정부에서 먼저 이곳에다가 아픔 역사를 되돌아보고 진정한 평화를 위한 교육의 장을 만들었어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가마오름 땅굴 진지 안. 예전에는 빛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엄청 갑갑했을텐데...

이게 1.2km에 달한다고 한다. 보통 긴게 아니다. 땅굴 파고 옆에 나무 박고...

동굴 중간에 전시해 놓은 모형. 실제로 곡갱이와 삽 하나만으로 위험한 땅굴 파는 작업을 했으니... 식량도 부족해 굶주림을 참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도 했다.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된 성산일출봉도 예외가 아니다. 가만히 보면 일출봉 주위에 구멍이 송송 뚫려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본은 이곳에도 해안 진지를 구축하기 위해 동굴을 만들었다.
 

성산일출봉 모습 가만히 들여다 보면 여기도 해안 진지 동굴이 보인다. 어딘가하면?

확대한 사진, 빨간색 원으로 표시된 곳이 일본군 해안 동굴 진지이다. 그 왼쪽에도 있다.

전쟁 요새화로 위기의 세월을 보냈던 제주

태평양전쟁 끝날 무렵, 일본은 전쟁 승리를 위해 제주를 방패막이로 쓰기로 결정했다. 제주 전역에 걸친 ‘전쟁 요새화’가 본격화된 계기다.

1945년 초, 일본은 연합군이 일본본토에 상륙하기 위해 반드시 제주를 거쳐 갈 것이라 판단했다. 결국 제주에 58군사령부를 창설하고 일본 정규군과 만주 관동군 약 7만5000명을 집결시켰다. 당시 제주 인구가 약 20만명 정도였다고 하니, 발에 채이는게 일본군인이었을 것이다. 그 뿐 아니라, 일명 ‘결7호 작전’에 따라 제주는 해안과 중산간 지역 곳곳에 진지를 구축했다. 제주도민들은 강제로 끌려가 동굴을 파고 진지를 만들었다.

아찔한 것은 연합군이 일본의 예상대로 제주에 상륙을 했다면, 분명 수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끔직한 불상사가 벌어졌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온갖 전쟁준비로 제주는 손만대면 터질 뻔한 화약고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일본 본토에 핵폭탄이 떨어져 수백만명의 사상자가 나온 뒤에야 일본은 항복했고, 제주는 안전할 수 있었다. 슬픈 사실은 어쨌건 전쟁은 죄없는 아이들과 사람들의 무고한 희생이 없이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주, 또 다시 화약고로 전락하나
 

심각한 문제는 지금 제주가 또 다시 군사적 긴장을 초래하는 불안한 화약고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제주 강정 앞바다에 대규모 해군기지를 건설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대다수 주민들의 목숨 건 반대에도 정부는 무자비하게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고 있다.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제주는 또 다시 동아시아 국가간의 견제와 긴장 속에서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잘 생각해보시라. 만약 나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이 칼을 들고 바로 옆에서 왔다갔다한다면 기분이 어떻겠는가?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동북아시아 국가들이 바로 그 심정이 될 것이다. 특히 중국은 매우 예민해 질 수 밖에 없다. 완공된 제주 해군기지에는 미군이 들어갈 것이기 때문이다. 미군은 60년대 이후부터 계속 제주에 대규모 해군기지를 만들려 했다. 지리적으로 동북아시아의 나라들을 견제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안그래도 미군기지를 한반도 서쪽에 있는 평택으로 다 옮긴 판인데, 제주에까지 미해군이 죽 치고 있으면 바짝 쫄 수 밖에 없다. 더욱이 중국은 제주에 대한 아픈 상처가 있다. 중일전쟁 당시 중국 난징을 향해 대규모 폭격했던 일본 전투기들이 모두 제주도에서 이착륙했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 기억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 보수진영에서는 자위대를 군대로 만들려고 혈안이 돼 있는데, 자기들 코 앞에 대규모 해군기지가 건설되면 더 난리를 칠 것이다. 속으로는 옳다구나 이때다 할 것이다. 명분이 생겼으니 말이다. 
 

생명과 평화의 섬으로 남길 바라며

무기는 무기를, 군대는 군대를, 전쟁은 전쟁을 불러온다. 군비 경쟁에서 승자는 없다. 서로에게 위협만 될 뿐이다. 차라리 지금 당장 해군기지 건설사업 중단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제주에 이득이 된다.

사업 예정지인 강정 앞바다는 5개 이상의 자연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을 만큼 생태적 가치가 높다. 독특한 지형과 다양한 수중생물 숨쉬는 자연의 보고다. 따라서 군사시설 대신 람사르 습지와 같은 세계적인 자연보호지역으로 선정하는 것이 더 낫다.

세계자연유산으로 선정되면서 훨씬 많은 이들이 제주도를 찾고 있다. 작년에 제주도의 세계자연유산 지구를 찾은 방문객은 자연유산으로 선정되기 이전 2006년보다 71.2%나 늘어난 385만명이다. 외국인관광객은 3배 가까이 늘어났단다. 세계자연유산 등재가 청정 제주도의 이미지를 가져다 준 것이다.

강정 앞바다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산호초 습지로 람사르 습지에 지정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곳이다. 또 강정 앞바다는 올레길이 지나 가는 곳이기도 하다. 국제적 보호 구역에 올레길까지 지나간다면, 지역 경제를 살리는 동시에 생명과 평화의 이미지로 제주가 더욱 알려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기라고 판명난 7대 세계경관 투표에 열을 올리기 앞서, 제주 해군기지 건설 사업을 중단하는데 더 많은 고민을 해야 한다. 아니 고민 할 것도 없다. 당장 기지 건설 사업을 중단하고 주민들과 함께 생명과 평화의 섬에 걸맞는 정책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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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세계적인 연산호 군락지, 제주 강정앞바다는 해군기지가 아닌 람사르 습지로 등록되어야 한다!
2.제주해군기지건설사업 사전환경영향 축소, 왜곡한 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