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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프롤로그] 바람



비행기가 떠오른지 4시간 반 정도 지났다. 중국을 지나고 중앙아시아로 들어가고 있었다. 허리가 뻐근해진다. 의자 앞에 있는 비디오 보기도 지겨워졌다. 음악을 틀고 창 밖을 볼 수 있게 블라인드를 열었다. 어두운 기내 속으로 환한 빛과 함께 환상적인 풍경이 빨려 들어온다.




황톳빛 사막 위로 거친 그림자가 용트림을 한다. 생명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 척박한 땅이 살아 꿈틀거리는 듯 보인다.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 황홀하게 다가 온다. 저곳을 걷는다면 어떤 기분일까. 누가 저 땅을 걸어가 본 적 있을까.

얼마쯤 더 갔을까? 이번에 눈 덮인 산을 만난다. 이제 곧 6월이다. 하지만 산 정상은 희긋희긋하다. 산의 굴곡이 더 거칠어졌다. 하늘 위에서 높이를 가늠해 보긴 힘들지만 보통 높은 산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저곳에도 어떤 삶이 있었을 것이다. 황량해 보이지만 누군가에겐 소중한 삶의 터전일 것이다. 길이 있을 것이고 보금자리가 있을 것이다. 여러 삶이 서로 엇갈려 지나갔을 수도 있다.


또 여행을 시작하고 있다. 쿨한 풍경에 설레고 핫한 만남에 가슴 뛸 것이다. 때론 밀려오는 고독과 갑작스런 상황들로 맥이 빠질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삶의 자리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낭싸고 떠난 이상 그냥 바람이 되면 된다. 발길 따라 떠나고 머물면 된다. 고민 따윈 개나 줘버리면 된다. 이것이 특권이다. 여행자에게 한정판매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