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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시

천년의 바람_박재삼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바람은 아직도 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에 쉴 새 없이 와서는

간지러움을 주고 있는 걸 보아라

아, 보아라 보아라

아직도 천년 전의 되풀이다.

 

그러므로 지치지 말 일이다.

사람아 사람아

이상한 것에까지 눈을 돌리고

탐을 내는 사람아.

 

[천년의 바람] 19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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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천년동안 소나무를 간지럽히고 있다.

어제나 오늘이나 그렇게 모든 생명들을 부드러운 손길로 감싼다.

지치지도 않고 세상 구석구석에 상쾌한 필요를 채워주고 있다.

바람 없는 지구를 상상할 수 있을까.

바람의 되풀이되는 무던한 움직임이 있어야 탁한 공기를, 먼지를 씻어낼 수 있다.

묵묵히 불어오는 바람으로 세상의 생명들이 살아 갈 수 있다.

이상한 것에까지 눈길을 돌리는 사람들.

생명 대신 죽음을,

평화 대신 파괴를,

사람들은 바람처럼 무던하지 못했다.

욕심은 나무를 간지럽히는 대신 나무를 베어버리고 나무의 뿌리를 뽑는 짓에 몰두하게 한다.

무던하지 못했던 까닭이다.

지쳤던 까닭이다.

안되는 것인 줄 알면서도 솟아나는 욕망을 다스리지 못했던 까닭이다.

이상한 것에까지 눈길을 돌리는 이유는.

천년의 바람처럼 있던 듯 없던 듯 그렇게 왔다 가면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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