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필요한 만큼만 먹고
필요한 만큼만 둥지를 틀며
욕심을 부리지 않는 새처럼
당신의 하늘을 날게 해주십시오
가진 것 없어도
맑고 밝은 웃음으로
기쁨의 깃을 치며
오늘을 살게 해주십시오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을 무릅쓰고
먼 길을 떠나는 철새의 당당함으로
텅 빈 하늘을 나는
고독과 자유를 맛보게 해주십시오
오직 사랑 하나로
눈물 속에도 기쁨이 넘쳐날
서원의 삶에
햇살로 넘쳐오는 축복
나의 선택은
가난을 위한 가난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가난이기에
모든 것을 버리고도
넉넉할 수 있음이니
내 삶의 하늘에 떠 다니는
흰구름의 평화여
날마다 새가 되어
새로이 떠나려는 내게
더 이상
무게가 주는 슬픔은 없습니다
[다른 옷은 입을 수가 없네]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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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0년도 더 흘렀다.
국방부 시계가 빨리 돌아가길 기다리며 구겨진 전투모를 쓰고 군용 짚차 안에서 사뿐사뿐 넘겨보던 이해인 수녀의 시집 속에 이 시가 새겨 있었다.
참 깔끔하면서도 쉽게 쓰여졌다.
강하면서도 겸손한 그녀의 신앙 고백이 성스러워 보여 그 당시 몇십 번이고 다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나도 시간의 때를 타서일까.
이젠 그녀의 고백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랜만에 차분하게 다시 읽어본 이 시 속 에 웬지 번민과 갈등이 시의 이면에 가득 묻어나는 듯 느껴진다.
그윽한 경지에 달하면 기도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이해인 수녀님 같은 분이 그런 걸 모르실리 없다.
하지만 이 시를 통해 그녀는 신께 가난한 새처럼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가진 것이 없어도 밝은 웃음으로 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신의 품에 가볍게 날 수 있는 새처럼 살아가는 것이 가장 자유로운 축복의 삶인 줄 알면서도, 뭔가 놓아버리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 속의 군더더기에 자꾸 미련이 남아서일까.
가벼워지지 않는 인간의 묵은 심지를 벗겨내버리고 싶어서일까.
참 멋진 고백이다.
나의 선택은 / 가난을 위한 가난이 아니라 / 사랑을 위한 가난이기에 / 모든 것을 버리고도 / 넉넉할 수 있음이니
바울이 그랬던가.
그리스도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 좇아간다고.
확신과 번민,
기쁨과 슬쁨,
행복과 고독,
자유와 구속,
이러한 것들이 그 분을 좇아가는 두 다리에 하나씩 맞물려 갈 수 밖에 없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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