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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시

포스터 속의 비들기_신동집

포스터 속에 들어 앉아

비둘기는 자꾸만 곁눈질을 한다

포스터 속에 오래 들어 있으면

비둘기의 습성도 웬만치는 변한다

비둘기가 노니던 한때의 지붕마루를

나는 알고 있는데

정말이지 알고 있는데

지금은 비어버린 집통만

비 바람에 덜럭이며 삭고 있을 뿐이다.

포스터 속에는

비둘기가 날아볼 하늘이 없다

마셔볼 공기가 없다.

답답하면 주리도 틀어보지만

그저 열없는 일

그의 몸을 짓구겨

누가 찢어보아도

피 한방울 나지 않는다.

불 속에 던져 살라보아도

잿가루 하나 남지 않는다.

찍어낸 포스터 수많은 복사 속에 포스터

다친 데 하나 없이 들앉아 있으니

차라리 죽지 못해 탈이다.


[사상계] 196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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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답답할까.

포스터 속에서 바람을 느끼며 날아 볼 자유마저 빼앗겼으니.

날개가 있어도 갇혀 있으면 아무 소용 없는 일이다.

찍어낸 포스터 속의 한결 같은 모습을 한 비둘기들.

시인의 말처럼 차라리 죽지 못해 탈이다.

찍어낸 듯 똑같은 교육의 틀 속에 아이들을 가두고.

찍어낸 듯 똑같은 신앙의 틀 속에 교인들을 가두고.

찍어낸 듯 똑같은 생활의 틀 속에 주민들을 가두고.

찍어낸 듯 똑같은 작업의 틀 속에 직장인들을 가두고.

찍어낸 듯 똑같은 콘크리트 틀 속에 강물을 가두고.

찍어낸 듯 똑같은 우리 속에 가축들을 가두고.

가두는 일과 갇히는 일.

변해버린 습성.

포스터 속의 비둘기는

아직도 시원한 공기 들이 마시며 푸른 하늘을 날고 싶어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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