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녹색운동/뉴스 인터뷰

‘사회참여도 해야지’ 알바하며 ‘촛불’

한겨레 기사입력 2008-05-15


[한겨레 창간 20돌] 출발! 새로운 20년 

내일 향한 오늘의 20대


대학생 전누리씨 

광우병집회 준비 밤새는 줄 몰라 


“띠디디딕, 띠디디딕~!”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아침 6시20분. “어제 몇 시에 잤더라?” 지난밤, 대학생 전누리(21)씨는 “청소년들의 광우병 반대집회 참석을 막겠다”는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말을 듣고 분노를 이기지 못했다. 그는 활동 중인 ‘청소년인권활동가 네트워크’의 기자회견 자료를 만들다, 새벽 2시가 넘어서야 잠에 들었다. 밥 대신 두유를 마시고, 서둘러 빨랫감을 세탁기에 던져 넣은 채 집을 나선다. 햇빛이 내리쬐기 시작한 동네 골목은 고요하게 반짝인다.


지하철 2호선 대림역에서 객차에 몸을 싣고 숨을 돌린다. 학교가 있는 용인 수지까지 가려면 선릉역에서 분당선으로 갈아타야 한다. 아침 7시5분. “그래 봐야, 어차피 쇠고기 수입될 텐데 뭐 …!” 어제저녁, 흥분한 채 이어지던 그의 말을 자르며 친구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대꾸할 말은 쉽게 떠오르지 않고, 전씨는 문득 화가 치민다.


2008년 5월, 대한민국에서는 733만여명의 20대들이 아침을 맞는다. 그들의 인구는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14.9%. 세대간 소통이 단절된 대한민국에서 20대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은 좀처럼 선배들의 귀청을 때리지 못한다. 386들은 20대에게 “치열하지 못하다”고 나무라고, 그 위 ‘유신세대’들은 “요새 애들은 도통 모르겠다”고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는 사이 20대들은 1년에 1천만원이 넘는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나와, ‘88만원’의 월급을 받는 비정규직 일자리로 내몰리는 중이다.


20대들에겐 할말이 없을까. <한겨레>는 세대간 닫힌 의사소통의 물꼬를 뚫어보고자 한국리서치와 함께 3일부터 7일까지 20대 505명을 상대로 ‘20대의 가치관’을 묻는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20대들은 성공을 위해 가장 필수적인 자산은 ‘능력’(33.7%)보다는 ‘돈’(38.1%)이라 생각하지만,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89.8%)는 희망의 끈도 놓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취업이 중요하잖아요.” 아침 7시30분.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김승현(26)씨는 도시락을 싸들고 부산 연산동 집을 나섰다. 누가 뭐래도 20대 최고 관심사는 ‘취업’(40.1%)이고, ‘돈’(13.6%) ‘결혼’(11.1%) ‘학업성적’(8.0%) 등은 그 다음이다. 김씨는 “나도 취업이 되긴 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동아대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지난해 여름 부산 시내 한 병원에 취직했다. 매일 병원 원무과와 총무과를 오가며 잡일을 도맡아 처리하는 비정규직이었다. 그렇게 해서 한 달에 김씨가 버는 돈은 기본급 80여만원에 상여금과 잡다한 수당들을 합쳐 100만원 정도. 그는 일이 너무 고되고, 월급이 박한데다, 무엇보다 앞날이 너무 캄캄하게 느껴져 올 2월 사직서를 냈다.


명품매장 직원 채희경씨

돈 모아 결혼해야지…‘결론은 재테크’


다른 20대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한 달에 얼마를 버냐’는 질문에 20대의 1위를 차지한 것은 ‘50만원 이하’(29.9%)였다. 그 다음으로는 ‘50만~99만원’(21.5%), ‘100만~149만원’(18.8%) 등이었다. ‘200만원이 넘는다’고 답한 사람은 15% 이하였다. 출구는 있을까. 김씨는 해운대 신시가지 쪽에 있는 독서실에서 밤 10시까지 국어·국사·행정학 따위의 공무원 수험 과목들에 매달린다. 


오전 9시30분. 채희경(23)씨를 태운 인천발 열차가 용산역에서 사람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채씨는 서울 용산에 있는 한 백화점의 명품 매장에서 일하는 판매 직원이다. 그는 2년 넘게 일하던 매장을 그만두고 이달 초 이곳으로 직장을 옮겼다. 채씨는 “이쪽이 처우도 좋고, 규모도 크다”고 말했다. 채씨는 “사회는 앞으로 더 좋아질 것 같은데 사람들 사이의 격차는 점점 더 커질 것 같다”고 말했다. 채씨의 예상은 20대들의 평균적인 미래 예측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재테크’다. “어릴 땐 빨리 시집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좀 생각을 접었어요. 돈을 모아야 결혼을 할 수 있으니까.” 그는 예전 손님 가운데 펀드 일 하는 분께 부탁해 10년까지 ‘10억 만들기 펀드’에 가입했다. 돈이 모이면 30대 중반에는 커피숍을 운영하는 게 꿈이다. “살기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 같은데


은행 수습사원 김병윤씨 

괜찮은 직장 단박에 합격 뿌듯 


저는 좋은 남편 만나서 좋은 쪽에 있으면 좋겠어요.” 채씨는 말끝을 흐리며 웃었다. 그는 “빨리 이곳에서 인정받아 정규직으로 전환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장님이시죠. 안녕하세요, 황민혁입니다.” 녹색연합 활동가 황민혁(26)씨는 수화기 앞에서 부드러워지는 음성 때문에 가끔 스스로도 놀란다.


녹색연합 활동 황민혁씨

환경운동은 내운명…기름유출 감시


마을 이장이 황씨를 보고 눈인사를 건넨다. 오후 2시. 황씨는 며칠 전 미군 송유관에서 발생한 기름유출 사고를 조사하러 평택으로 내려왔다. 황씨는 대학 시절 기독교 계열의 환경운동 모임에서 활동했다. 그는 “이 땅에서 발생하는 환경문제를 외면하며 살기 힘들 것 같다”는 느낌을 받고 전업 활동가로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기지 담벼락에서 30m 정도 떨어진 논에 도착하니, 역한 기름내가 코를 찌른다. 논두렁 곳곳에 기름유출을 측정하는 노란색 관측정이 박혀 있다. 그 와중에 귀가 찢어질 듯한 군항공기 소음이 계속 울려 퍼진다. 서둘러 오염 현장을 사진기에 담고, 수첩에 현장 상황을 적어 나간다.


그러나 또래들은 황씨 같이 적극적이고 집단적인 사회참여에는 익숙지 못하다. 20대의 75.2%는 ‘지난 1년 동안 사회문제나 현안과 관련해 집회·시위·세미나·공청회 등에 참여한 바가 없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환경보호를 위해 평소 생활방식을 바꿀 의향이 있느냐’와 같이 개인적·소극적 참여를 묻는 질문에는 절대다수인 91.2%가 ‘있다’고 답했다.


오후 5시, 우리은행 강남구청 지점. 개인 여신 업무를 담당하는 김병윤(25) 계장은 혼자 ‘1인 3역’을 소화하고 있다. 김씨는 올해 초 우리은행에 입사한 수습 행원이다. “고객님 안녕하십니까. 만기일이 곧 돌아오는데요, 연장 원하시면 가능하시구요.” 한 손으로는 전화기를 들고, 그 와중에 밀린 결재 서류를 제출하라는 팀장의 지시가 떨어진다. 눈앞에는 순서를 기다리는 손님들의 줄이 한없이 이어진다.


공무원 준비 김승현씨

비정규직 잡일 지쳐 방향 바꿔


김씨는 “2002년 대학에 입학해, 군대를 마치고, 취직하기까지 한 번도 쉬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래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단번에 합격한 사실을 떠올릴 때면 가슴 한쪽이 뻐근하다. “매일 은행문을 열고 들어설 때마다 옷매무새를 고치고 왼쪽 가슴에 달린 배지를 확인해요. 제가 저희 매장 출근 2등이거든요. 1등은 7시30분까지 나와야 하는 그날 당번이구요.” 1·2차에 걸친 면접을 뚫고 최종 합격 사실을 알리던 날, 어머니는 손을 붙잡고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20대들이 직업 선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급여 등 경제적 보상’(35.2%)과 ‘적성과 선호’(33.2%)로 나타났다. ‘직업 안정성’(10%), ‘장래성’(9.3%), ‘사회적 지위’(7.7%) 등이 뒤를 이었다. 공무원·대기업·중소기업·창업 중 하나를 택하라는 물음에는 공무원(55.1%)→대기업(20.5%)→창업(19.0%)→중소기업(5.4%)이란 선호를 보였다.


저녁 7시. 수업을 끝낸 전누리씨는 도서관을 어슬렁거리다 학생식당 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식당이 있는 건물 벽의 빈 공간들은 늘 취업 안내문들로 빼곡하다. ‘공무원’ ‘의학대학원’ ‘영어연수’ …. 전씨는 가끔 혼자 딴세상에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는 일주일에 세 번 아는 선배 술집에서 ‘알바’를 해 한 달에 50만원을 번다. 25만원은 용돈으로 쓰고, 25만원을 모으면 다음 학기 등록금 330만원을 만들 수 있을까. 전씨는 ‘군대나 갈까’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황급히 지운다.


저녁 7시15분. 김승현씨는 정보처리기사 시험 준비에 몰두해 있다. “왜냐구요? 자격증을 따면 공무원 시험 볼 때 3점 가산점을 받거든요.” 7월로 예정된 서울시 공무원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 부산에서도 대부대가 상경할 예정이다. 그는 부산에서는 ‘아무래도 뭔가 부족해’ 앞으로 두세 달 정도 서울 학원가에 머물며 유명 강사들의 강의를 들어볼까 고민 중이다.


팀원들과 술 한잔을 걸친 김병윤씨가 택시 안에서 시계를 본다. 밤 11시. 안부를 전한다. 그는 아마 내일도 아침 6시에 일어나, 다른 사람보다 빨리 객장에 나가야 할 것이다. 


밤 12시. 평택에서 올라온 황민혁씨는 얼마 전 정보공개를 신청했던 군기지 오염 정화 관련 자료를 분석하고 있다.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어 담당자와 통화를 시도하려다 수화기를 내려놓는다. ‘아, 시간이 늦었구나.’ 황씨는 쓰게 웃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황씨의 콧노래가 흐른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 ….’ 머잖아 황씨도, 다른 733만명도 나이가 들고, 서른이 되고, 마흔을 넘길 것이다. 세상은 그들에게 싸우고 경쟁해 마침내는 이기라고 말한다. “같이 공존하며 살 방법은 없을까.” 집에 도착한 황씨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늘 그랬듯 해답은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길윤형 황예랑 기자 charisma@hani.co.kr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28774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