ㄱ.
그녀가 또 다른 그녀의 외딴 방을 떨리는 손으로 열었을 때, 왈칵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느 조용한 카페의 이층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책의 마지막 장은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하필 그 순간 기다리던 사람이 왔다. 머쓱해져 버렸다. 어색한 눈물을 닦으며 소설 속에서 나를 빼내고 있었다.
ㄴ.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하지만 그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글쓰기를 생각해본다,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하고."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리곤 작가 신경숙의 청소년기, 서울에 올라와 공장에서 일하며 산업체특별학급으로 고교시절을 보낸 그녀의 이야기가 독백처럼 이어진다. '작가 신경숙의 현재'는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다시 들춰내기 힘들어한다. 묵묵히 돌아가기엔 외딴 방은 그리 만만한 공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아예 그 시절 그 곳의 문을 닫아 걸고 다시는 발걸음 하지 않고 싶어 했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ㄷ.
구로공단, 공장, 노동조합, 소음, 에어드라이버, 독재정권, 5.18 광주민중항쟁, 영등포역, 산업체특별학급, 컨베이어 라인 1,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우물, 쇠스랑, 그리고 외딴 방...
대부분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듣기만 해도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저 단어들. 그리고 저 단어들로 이어지는 문장들...
ㄹ.
"내겐 길거리나 집보다는 자연 속에 놓여 있을 때가 좋았다. 집보다는 자연 속에 놓여 있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집에서보다 자연 속에 놓여 있을 때 금지된 일이 더 많았다. 금지의 구역엔 늘 이끌림과 함께 상처가 도사리고 있었다."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작가의 말이다. 자연, 금지의 구역, 이끌림과 상처. 급속한 산업화로 도시의 공장 속에 들어가면서 그녀의 이 말은 이렇게 바뀐다.
"시골에선 자연이 상처였지만 도시에선 사람이 상처였다는 게 내가 만난 도시의 첫 인상이다. 자연에 금지구역이 많았듯이 도시엔 사람 사이에 금지구역이 많았다. 우리를 업수이 여기는 사람, 다가가기가 겁나는 사람, 만나면 독이 되는 사람... 그러나 그리운 사람."
결국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었을 것이다. 자욱해져 가는 공장 굴뚝의 연기만큼이나 뿌옇게 흐려져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 자연이라기 보다는 야생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한 각박한 관계의 그물, 그 금지된 구역에서 일어나는 이끌림과 상처들, 그러나 벗어날 수 없는 외딴 방.
그녀의 기억을 수놓고 있는 그 시절의 이야기는 결국 외딴 방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끌림과 상처의 변주곡이다.
ㅁ.
소설 속에서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가 계속 대화를 한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걸려고 할 때마다 머뭇거린다. 그 둘 사이를 보며 "독자인 나"는 긴장을 한다. 단지 그녀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세련된 흐름 때문만은 아니다. 소설 속 "현재의 나"가 대화하는 "과거의 나"는 이 도시 속에서 여전히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걸 "독자인 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외딴 방은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ㅂ.
상처에 대한 고백은 또 다른 상처를 살포시 감싼다. 그녀의 과거 속 외딴 방은 지금도 저 홀로 외로운 외딴 방들에게 미래를 꿈꾸게 한다. 자신이 겪고 있는 상처들도 언젠가 묵묵히 주억거리며 풀어낼 수 있으리라는 조그마한 희망을 갖게 한다. 그래서인가. 그녀의 외딴 방은 더이상 외딴 방일 수 없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그녀가 처음 말했다. 그녀의 글쓰기를 문학이라 할 수 있을지. 그녀에게 있어서 글쓰기가 무엇인지.
책의 마지막장을 넘기며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문학이라는 범주는 그녀의 글쓰기에서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그녀의 글에 마침표가 찍혀진 이상, 그녀 스스로에게 묻는 그녀의 글쓰기에 대한 질문은 결국 읽는 사람들에게 넘겨질 수 밖에 없는 소중한 몫이라는 걸.
잘 읽었다.
그녀가 또 다른 그녀의 외딴 방을 떨리는 손으로 열었을 때, 왈칵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느 조용한 카페의 이층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책의 마지막 장은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하필 그 순간 기다리던 사람이 왔다. 머쓱해져 버렸다. 어색한 눈물을 닦으며 소설 속에서 나를 빼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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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하지만 그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글쓰기를 생각해본다,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 하고."
소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리곤 작가 신경숙의 청소년기, 서울에 올라와 공장에서 일하며 산업체특별학급으로 고교시절을 보낸 그녀의 이야기가 독백처럼 이어진다. '작가 신경숙의 현재'는 그 시절의 이야기를 다시 들춰내기 힘들어한다. 묵묵히 돌아가기엔 외딴 방은 그리 만만한 공간이 아니었을 것이다. 아니, 아예 그 시절 그 곳의 문을 닫아 걸고 다시는 발걸음 하지 않고 싶어 했을 수도 있었겠다, 싶다.
ㄷ.
구로공단, 공장, 노동조합, 소음, 에어드라이버, 독재정권, 5.18 광주민중항쟁, 영등포역, 산업체특별학급, 컨베이어 라인 1,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우물, 쇠스랑, 그리고 외딴 방...
대부분 경험해보진 않았지만, 듣기만 해도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저 단어들. 그리고 저 단어들로 이어지는 문장들...
ㄹ.
"내겐 길거리나 집보다는 자연 속에 놓여 있을 때가 좋았다. 집보다는 자연 속에 놓여 있을 때 가슴이 두근거리는 일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집에서보다 자연 속에 놓여 있을 때 금지된 일이 더 많았다. 금지의 구역엔 늘 이끌림과 함께 상처가 도사리고 있었다."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작가의 말이다. 자연, 금지의 구역, 이끌림과 상처. 급속한 산업화로 도시의 공장 속에 들어가면서 그녀의 이 말은 이렇게 바뀐다.
"시골에선 자연이 상처였지만 도시에선 사람이 상처였다는 게 내가 만난 도시의 첫 인상이다. 자연에 금지구역이 많았듯이 도시엔 사람 사이에 금지구역이 많았다. 우리를 업수이 여기는 사람, 다가가기가 겁나는 사람, 만나면 독이 되는 사람... 그러나 그리운 사람."
결국 그녀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것이었을 것이다. 자욱해져 가는 공장 굴뚝의 연기만큼이나 뿌옇게 흐려져가는 사람과 사람 사이, 자연이라기 보다는 야생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듯한 각박한 관계의 그물, 그 금지된 구역에서 일어나는 이끌림과 상처들, 그러나 벗어날 수 없는 외딴 방.
그녀의 기억을 수놓고 있는 그 시절의 이야기는 결국 외딴 방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끌림과 상처의 변주곡이다.
소설 속에서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가 계속 대화를 한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나"에게 말을 걸려고 할 때마다 머뭇거린다. 그 둘 사이를 보며 "독자인 나"는 긴장을 한다. 단지 그녀의 이야기와 그 이야기가 가지고 있는 세련된 흐름 때문만은 아니다. 소설 속 "현재의 나"가 대화하는 "과거의 나"는 이 도시 속에서 여전히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는 걸 "독자인 나"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외딴 방은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ㅂ.
상처에 대한 고백은 또 다른 상처를 살포시 감싼다. 그녀의 과거 속 외딴 방은 지금도 저 홀로 외로운 외딴 방들에게 미래를 꿈꾸게 한다. 자신이 겪고 있는 상처들도 언젠가 묵묵히 주억거리며 풀어낼 수 있으리라는 조그마한 희망을 갖게 한다. 그래서인가. 그녀의 외딴 방은 더이상 외딴 방일 수 없다고 느껴지는 이유가.
그녀가 처음 말했다. 그녀의 글쓰기를 문학이라 할 수 있을지. 그녀에게 있어서 글쓰기가 무엇인지.
책의 마지막장을 넘기며 생각했다. 그녀는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문학이라는 범주는 그녀의 글쓰기에서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그녀의 글에 마침표가 찍혀진 이상, 그녀 스스로에게 묻는 그녀의 글쓰기에 대한 질문은 결국 읽는 사람들에게 넘겨질 수 밖에 없는 소중한 몫이라는 걸.
잘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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