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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e/책

진리를 추구하는 정치

실천도덕으로서의 정치 : 바츨라브 하벨의 역사 참여(박영신)을 읽고



실천 도덕으로서의 정치(바츨라브하벨의 역사참여)

저자
박영신 지음
출판사
연세대학교출판부 | 2000-03-10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저항의 인물로, 대표적 지성인으로, 현직 대통령으로 이 시대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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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체코슬로바키아를 해방의 길로 이끈 벨벳혁명은 부드럽게 정권 교체를 이룬 단순한 무혈혁명으로만 의미를 축소시켜선 곤란하다. 벨벳혁명은 한 나라의 정권이 다른 정권으로 교체된다는 의미의 혁명이 아니다.  참된 삶을 위해 이데올로기에서 진리로, 체제에서 도덕으로, 의무에서 책임으로, 제도에서 실존으로 정치를 새롭게 탈바꿈하기 원했던 체코슬로바키아인들의 희망의 과정이며, 결과이다. 참 지성인들의 역사 전통이 여전히 그들의 삶의 자리 속에서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한 사건이며,  도덕을 정치의 바탕으로 삼는 민족의 양심에 응답한 메아리이다. 


바츨라브 하벨은 그 역사 사건의 의미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물이다. 하벨은 비정치의 정치, 진리의 정치, 실천도덕의 정치를 추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지도자가 됐다. 지나치게 이상향을 쫓는 인상을 풍겼음에도 사람들을 바벨을 끝까지 신뢰했으며, 혁명 후에는 대통령의 소임을 맡게 된다. 하벨 개인의 사상과 능력도 있었겠지만, 체코슬로바키아의 역사 전통과 인민들의 희망의 바탕이 하벨이라는 인물을 자신들의 대리자, 즉 희망의 모형으로 추구했기 때문이리라. 진리를 추구하는 정치, 실천도덕을 바탕으로 하는 정치의 가능성을 보여준 그의 삶은 비단 체코슬로바키아 뿐 아니라 우리의 현실, 그리고 세계의 상황을 되돌아 볼 수 있게 해 준다.



1. 20세기 체코슬로바키아 역사 상황


체코슬로바키아는 20세기 초까지 다원주의를 꽃피운 민주주의의 고장이었다. 하지만 히틀러에 의해 1938년부터 6년동안 나라를 잃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45년 5월 체코슬로바키아에는 나라를 되찾지만, 이번엔 공산화 과정이 진행됐다. 억압의 시대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하지만 체코슬로바키아 인민들은 쉽게 독재 정권에 굴하지 않았다. 결국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아래로부터’의 변화의 요구로 1968년 4월부터 가혹한 공산체제에서 벗어나 ‘사람의 얼굴을 가진 사회주의’를 만들겠다는 구호 속에서 거대한 개혁이 시작됐다. 일명 프라하의 봄이 찾아 온 것이다. 


그러나 따스한 봄 기운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체코슬로바키아는 또 다시 시린 겨울의 한가운데로 내몰렸다. 바르샤바조약기구군의 침입으로 공산당은 ‘정상화’라는 미명 아래에서 엄격한 중앙통제 독재 체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후스와 마사릭과 같은 인물은 도덕을 바탕으로 한 진리의 실천 지성인들을 낳은 이 나라는 쉽게 권력의 폭력 앞에 좌절하지 않았다.  ‘인권’ 탄압에 항의하고 헬싱키 조약을 준수하도록 촉구한 ’77 헌장’ 운동으로 달아오르기 시작한 저항의 외침은 결국 1989년에 벨벗혁명을 성공시키기에 이른다. 맑스-레닌주의를 폐기한 것과 동시에 재야에서 혁명을 이끌었던 바츨라브 하벨이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2. 바츨라브 하벨의 발자취


바츨라브 하벨은 1936년 10월 5일,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도인 프라하에서 부유한 토목 기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12세가 되던 해에 나라가 공산화가 되면서 고등 교육을 받을 길이 막혔다. 출신과 정치성향 때문이었다. 하벨은 20세부터 문학과 연극 관련 잡지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25살이 되던 1960년에 그의 처녀작인 “가든파티”가 공연된 후 작가로서 인권과 자유를 위한 저항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1968년 3월에는 ‘독립작가 써클’ 7인 위원회의 위원장이, 8월에는 작가 동맹 중안위원회 위원이 된다.


하지만 공산당이 ‘정상화’ 정책으로 체제를 더욱 강화하면서, 저항의 지성인인 하벨은 여러 차례 구속됐을 뿐 아니라 금서 작가 명단에도 오르게 된다. 문화 에술 활동의 탄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면서, 하벨은 인권과 자유의 존중을 촉구하는 ‘77헌장’ 운동을 이끄는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헌장의 담긴 뜻을 직접 실천하기 위해 ‘부당하게 기소된 자들을 변호하는 모임(VONS)’의 위원으로 창립에 참여했지만, 이 일로 국가전복죄로 기소돼 4년 6개월 형을 받는다. 작품활동도 꾸준히 하면서, 희곡 예술에 끼친 공로가 인정되어 1986년 ‘에라스무스상’을 받기도 한다.


하벨을 비롯한 많은 지성인들이 권력의 억압 속에서도 꾸준한 실천 저항 운동을 벌이던 가운데, 1985년부터 소련에서 개혁 정책의 훈풍이 불면서 체코슬로바키아의 상황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폴란드와 헝가리, 독일에서도 변화의 물결이 일렁였다. 결국 1989년 11월 17일, ‘프라하의 봄’ 이후 최대 규모의 학생시위가 프라하 거리에서 벌어졌다. 19일 반정부 세력의 각종 조직이 만들어졌고, 21일 20만명이 넘는 군중들이 벤체슬라스 광장에 모이면서 반정부 시위는 절정에 달했다. 25일 75만명의 초대형 시위 집회와 27일 총파업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정부는 결국 두 손을 들게 된다. 하벨은 시민포럼의 대표로 당과 협상해 연방 의회를 구성하고, 마침내 12월 29일 연방 의회에서 만장일치로 대통령으로 선출된다.



3. 진리, 저항 운동의 근거


하벨의 힘은 기술이나 기법에 있지 않았다. 그의 힘은 진리를 추구하며 도덕을 바탕으로 한 삶의 자세에 있었다. 하벨은 욕망을 분출하기 위한 방종의 도구로 저항운동을 한 것이 아니다. 진리를 추구하여 거짓의 굴레에서 벗어나 참된 삶을 살기 위한 과정의 결과가 저항운동으로 이어진 것이다. 


하벨에게 진리란 참된 자기 모습을 찾는 것이다. 기계처럼 자동으로 돌아가는 거짓 체계 속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빛이다. 즉 인간은 ‘거짓 안에서의 삶으로부터’ 벗어나오기 위해 ‘진리 속에 사는 삶’을 추구해야 하며, 이를 통해 억눌러 왔던 자신의 참모습과 품위를 다시 찾아 자유의 의미를 스스로 경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벨이 저항 운동에 관심한 것은 진리 때문이었다.  그가 ‘후기 전체주의’체제라고 이름한 공산주의 독재체제는 진리의 삶을 억압했다. 독재체제를 굳히는 데 사용된 공산주의는 더 이상 인민을 위한 사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이 이데올로기는 독재 체제 속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세상으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참된 주장과 면목없는 생활 양식을 감출 수 있도록 했다. 그는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포스터를 내건 식품관리인의 비유를 통해 상부에 충성스런 모습을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껍데기만 남은 이데올로기의 허상을 밝혀냈다.


그는 후기 전체주의와 같은 사이비 진리는 ‘진리 안에서의 삶’으로 부딪혀내야 한다고 밝힌다. ‘진리 안에서의 삶’을 통한 도덕 행위로 거짓 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는 것이다. 거짓 체제의 부속품으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진리 안에서의 삶’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타협을 거부하고 거짓에 젖어 살지 않아도 진리 안에서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줌으로써 거짓의 힘과 논리가 무력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항 세력은 인간의 의식과 양심의 수준, 실존의 수준에서 대결해야 하는 것이다. 현실 정치의 권력 수준으로 맞붙어 싸우는 것은 올바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그의 저항 운동, 정치 활동은 간디의 유명한 말처럼 ‘진리에의 실험’일 뿐 아니라 ‘진리를 추구한 결과’인 것이다.



4. 도덕, 정치의 뿌리


하벨에게 있어서 진리 안에서 사는 삶은 자기 자신의 책임 의식에 대한 제어력을 되찾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 시도는 높은 도덕성을 지향한다. 인간의 탐욕이 빚어내는 삶의 한계와 제한성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부속품처럼 작동하는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참된 공공 영역으로 관심을 펼쳐나가는 시민의 행위는 도덕성에 뿌리 내린 책임 의식 없이는 불가능하다. 진리 안에 사는 삶을 사는 것은 “공동의 책임”에 주목하는 도덕적인 삶이다. 따라서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조의 변화와 개인의 변화가 함께가야 한다.


하벨은 인간의 도덕성에 뿌리내리고 있는 정치를 ‘반정치의 정치’라는 말로 개념화한다. 그는 정치를 실천도덕으로 진리에 대한 봉사로, 우리와 같은 인간들을 본질에서 인간답게 그리고 인간으로서 헤아려 할 수 있는 보살핌으로 여긴다고 밝혔다. 그는 체제나 구조의 변화에 정치의 목적을 두지 않고, 실존과 도덕의 깊은 수준에서 일어나야 할 변화에 초점을 두었다. 인간 존재가 이 세계에서 어떻게 자리 지워져야 하고 이들 존재는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하며, 우주와는 또 어떻게 관계 지워져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의 문제에서 변화를 목표로 한 것이다. 이러한 반정치를 통해 도덕의 힘을 되살리고, 더럽혀진 삶의 몰도덕성을 정화하여, 도덕성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정치 아닌’ 정치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자 했다.


생각을 행동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 하벨은 오늘의 인간성의 구조와 영혼에서 어떤 근원의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보았다. 이 혁명적인 변화를 위해 초월의 존재를 밑바탕으로 하는 인간성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열어간다. 결국 그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출발하는 실존에 대한 변화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며 실존의 변화는 다른 사람과 상관 없이 자신이 먼저 ‘진리 안에서의 삶’을 살아가려고 시작하여, 초월의 존재로부터 들려오는 소리를 먼저 듣고 그 소리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으로 경험된다. 여기서 초월의 존재는 의미의 실존의 추구이며 의미의 추구이다. 현실를 도피하는 비현실주의가 아니다. 즉 현실 속에 살면서도, 그 현실을 넘어서기 위해 초월의 ‘존재’를 향하여 자신을 방향 짓어 새로운 희망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5. 새로운 정치를 향하여


하벨은 대통령이 돼서도 도덕성이 중요하다는 관점을 놓치지 않았다. 1990년의 신년사를 통해 지난 잘못된 지난 시대의 책임을 체제에만 돌리지 않았다. 거짓된 삶에 자신을 맡기고 몰도덕성에 빠져 살았던 인민 모두가 희생자이며 공범자임을 분명히 했다. 아픈 역사의 새로운 씨밭의 가능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들 스스로에 대하여 저지른 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벨은 삶의 방식의 변화를 통해 새로운 정치를 만들고자 했다. 따라서 그의 정치는 이웃한 모든 인간에 대한 인간다운 보살핌을 펴는 ‘실천 도덕’의 행위를 낳는 진리에 봉사하는 일이었다. 민주스럽고, 번영되며 사회가 정의로운 국가를 위해 ‘제도 개혁’이 아닌 ‘실존 혁명’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하벨은 오늘의 세계를 지배하는 타락된 정치 행위와 정치세계는 도덕차원에서 문제가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즉 새로운 정치를 말하기 위해서는 도덕 수준에서 정치를 말하고 도덕의 바탕에서 정치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도덕의 바탕을 세우기 위해서는 초월의 영역에 대한 깊은 감수성을 놓치지 않는 믿음 위에서 더 높은 차원의 책임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하벨은 보았다. 인간의 자아는 초월의 존재로부터 ‘떨어져 나온 존재’이기 때문에 초월의 존재를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초월의 믿음위에서 초월의 경험을 통해 공동체에 대한 애정을 갖는 책임과 도덕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벨이 말하는 초월의 경험은 혼자 고립된 상태의 존재가 아니고, 서로 관련되고 연결되어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즉 이 경험을 통해 ‘인간의 공동체성’을 살려 서로 자발적이면서도 서로 책임을 다하는 시민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6. 참 지성인이 되기 위하여


지성인은 감수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삶을 꿰뚫어 봐야 할 의무감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하벨이 이해했던 것처럼 다가오는 파국을 알려주는 ‘카산드라’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가올 여러 위협과 파멸을 알려주는 구약 시대의 예언자의 모습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남다른 감수성과 굴하지 않는 의무감은 지성인이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지성인의 삶의 자세는 이미 규격 지어져 있는 것과 들어 맞지 않는다. 틀에 박힌 정치 형태에 새 바람과 새정신과 새정신성을 불어넣어주는 것이 바로 지성인의 삶이라는 것이다.


또한 지성인은 영혼 없는 시대에서 정신의 등불이 돼야 한다. 정신 가치의 상실은 오늘의 문명이 안고 있는 위기이자 질병이다. 지성인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안고 있는 오늘의 문제와 씨름하며 고뇌하고 앞으로 다가올 상황에 대하여 깊이 걱정하여 마음속으로부터 피할 수 없는 넓은 책임의식을 갖아야 한다. 따라서 좁은 틀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한 번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전체 해결론’의 위험에 빠져서는 안 된다. 전체사회해결론은 포퍼의 말처럼 전체주의를 낳을 뿐이다. 지성인은 예측 할 수 없는 것과 신비스러운 것까지 받아들이는 겸허한 자세로 세계의 정신과 영혼의 공허한 공간을 채워야 하는 것이다.


하벨은 현실 정치에 들어가서도 쉽게 통례의 상황과 화합하지 않았다. 지성인의 순수성과 청결함을 지키려는 결의 때문일 것이다. 그는 대통령이면서도 언제나 자신을 지성인으로 이해하고 지성인의 범주 속에 자신을 넣으려고 했다. 이러한 이유로 한 나라의 유동하는 정세에 발맞춰 표를 얻고 잃는데서 결판나는 정치만을 정치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정치라는 기계의 부속품이 되지 않으려는 끝까지 노력을 놓지 않았던 것이다.



7. 나가는 말


진리 속에서, 진리를 이루기 위해, 진리를 향해 살았던 한 인물을 살펴 보았다. 시대의 예언자이면서, 겸허하게 사회의 방향을 찾아 나가는 지성인의 한 사람이었던 하벨의 삶과 사상은 여러 생각거리를 던져주었다. 도덕을 바탕으로 공공을 위한 책임을 갖는, 하지만 그 자체가 억압이 아닌 자유를 줄 수 있다는 희망이 동유럽의 한 국가에서 실험됐다. 모든 이들이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초월에 대한 믿음은 새로운 정치를 구현해나가는 모습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져주고 있는 듯 하다.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로 나라의 지도자가 당선이 됐다는 사실에 우리 사회의 상황에 절망할 수도 있지만, 구조와 제도, 체제의 변혁이 아닌 진리와 도덕의 추구가 참된 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읽으면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특히 하벨의 초월과 유기체의 깨달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다른 사람들과 관계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기독교의 사상과 믿음의 핵심 중 하나이다. 비단 기독교 뿐 아니라, 다른 종교에서도 그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주제를 좁혀 앞으로 하벨의 ‘관계성의 깨달음’이 인간에게만 국한 된 것인지 다른 생명들에게도 연결 된 것인지 좀 더 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이러한 그의 사상과 믿음이 소위 말하는 ‘시민 종교’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도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