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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 익숙해지지 않는 텅 빈 어둠 속으로 기어들어간다 희미해진 건 순간이다 선로를 벗어난 것도 아닌데 귓가를 더 세게 때리는 바퀴 굉음이 불안하다 길진 않다 다만 낯설 뿐이다 창에 비친 사내가 또렷해졌다 아직도 지나가버린 역 앞에 서성이고 있다 햇살이 레일 밑에 깔리고 흐릿한 형광등 밑에 사내는 구겨진 편지가 된다 지나치는 것 뿐인데 낯선 어둠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일본 구마노행 열차 안에서 더보기
라오스판 노근리양민학살사건, 탐피유 동굴을 가다 [불편한 유산 #3] 라오스 탐피유 동굴 1950년 7월 26일, 3일동안 미군이 민간인 3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노근리양민학살사건이 시작된 날이다. 꼬박 61년이 흘렀지만 남은 이들의 아픔은 여전하다. 라오스에도 똑같은 사건이 있었다. 학살자는 이번에도 미군이었다. 무장하지 않은 민간인 437명을 동굴에서 학살한 탐피유사건이다. 그 불편한 전쟁 유산의 현장을 찾았다. 포탄 연기 사이로 흘러 나오던 비명소리는 여전히 동굴 주위를 떠나지 못하고 있다. 이름도 제대로 적히지 못한 무덤의 주인이 되어야만 했던 이들. 왜 죽어야 하는지 조차 모르고 목숨을 빼앗긴 그들의 눈물은, 이젠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 속으로 흘러 내리고 있었다. 40여년이 지났지만 시간은 그렇게 멈춰 있다.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4.. 더보기
고요함의 유혹, 일본 고야산 가을, 티없이 맑은 하늘이었다. 밑에 있는 사람이 아득하게 보일 정도로 높고 곧은 나무들이 쭉 뻗어 있었다. 못해도 수백년은 그 자리를 지키고 서 있을 듯 하다. 나무 그늘 밑으로 꽉 들어 찬 무덤과 비석들. 각기 다른 모습의 절. 길 사이사이를 조용히 걸어가는 사람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유명 관광지치고는 신비할 정도로 경건한 그 곳. 일본의 고야산이다. 오사카에서 전철을 타고 한시간 반쯤 갔을까? 경사진 산등성이를 쭉 타고 오르더니 조그마한 역에서 내렸다. 웅성웅성 내리던 사람들과 역 앞에 있는 버스를 갈아타고 얼마쯤 지나 도착지에 내렸다. 사방을 둘러보니 왠지 설렌다. 짝사랑하는 아이에게 생일 초대를 받은 기분이랄까. 꽉 들어찬 키 큰 나무들과 이제 시작되는 가을 속으로 조금씩 물들어가는 단풍에 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