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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탱크 위에 자란 풀무더기, 베트남 DMZ [불편한 유산 #1] 베트남 비무장지대 평온하다. 처참하게 울려대던 총소리 대신 재잘거리는 새울음소리만 적막한 공간을 채운다. 점점 붉게 변하는 녹슨 탱크 위로 초록의 풀꽃들이 무더기 지어 자란다. 적진을 향해 있던 155m 포 역시 수명을 다한 채 잠들어 있다. 최전방의 대형 군기지는 관광객을 맞이하는 아담한 모습의 기념관으로 변했다. 불과 몇십년 전만해도 매케한 화약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을 하던 참혹한 전쟁의 현장, 베트남 DMZ의 요즘 모습이다. 전쟁의 흔적을 따라 9번 도로를 타고 남북으로 길게 늘어진 베트남의 가운데를 가르는 9번 도로를 따라간다. 1954년 7월, 제네바에서 맺어진 협정으로 이 일대는 약 20년동안 베트남 남북을 가르는 비무장지대, DMZ가 됐다. 17도선 분계선을 중심으로 남.. 더보기
나무 십자가 위 예수 오늘도 외롭게 십자가 위에 매달려 있다 바람은 더 싸늘해지고 안개는 점점 짙어지고 햇살은 산 밑으로 저무는데 그는 나무 아래로 내려올 수 없다 자칭 예수쟁이들이 포크레인 삽질로 저 맑은 강물과 저 푸른 생명들과 저 선한 농부들을 갈기갈기 찢으려 한다 돈 쳐먹고 돈 돼지들의 입 속으로 꾸역꾸역 시뻘건 핏물이 들어갈 때 그는 또 나무 위를 오른다 오늘도 그는 그를 믿는다는 자들 때문에 외롭게 십자가에 매달린다 팔당유기농 단지에서 더보기
새벽을 깨우는 나눔 순례, 라오스 루앙프라방 라오스 루앙프라방 탁밧 거리로 모여드는 분주한 발걸음들이 적막한 도시의 새벽을 깨운다. 어두운 골목 사이사이에서 무언가를 손에 든 실루엣들이 거리로 바쁘게 걸어간다. 거리 가장자리에는 이미 줄을 맞춰 앉아 있는 사람들로 빼곡하다. 6시쯤 지났을까. 주황색 승복을 입은 승려들이 멀리서부터 다가온다. 손에는 음식을 담을 수 있는 항아리인 발우를 하나씩 들고 있다. 곳곳에 자리한 외국인들이 기다렸다는 듯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루앙프라방의 탁밧이 시작됐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한쪽은 무릎을 꿇고 음식을 나누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 바로 앞에는 맨발로 루앙프라방의 아침을 걸어가는 승려들이 길게 줄 서 있다. 보시하는 이들은 각양각색이다. 나이 든 할머니부터 젊은 총각에 이르기까지, 머리카락이 노란 서양사람.. 더보기